나의 휴가기

일과 휴식은 대립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관적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2019-09-29

토스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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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베이(Pompeii)와 베수비우스(Vesuvius)산 등정 - 2019.9.29(일)


(1) 폼베이 


폼베이는 약 20여년전 아내와 같이 국내여행사의 이탈리아 투어를 갔다가 잠깐 들린 적이 있었으므로 이번이 두 번째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발칸클럽에서 2013년(5/24~6/7)에서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을 중심으로 지중해 크루즈여행(참석자: 김종욱, 김종훈, 원대연, 이노창, 이태용, 신필렬, 민남규, 정준명 회원과 2명의 게스트 부부 / 20명 + 크루즈월드 백지선 실장)을 하였었다.


그 당시 터키를 거쳐 그리스의 로도스섬, 산토니섬, 크레타섬과 그리스 아르고스톨리(Argostoli)를 거쳐 이태리의 시칠리섬까지 아름다운 섬과 지중해여행을 만끽하였다. 하지만 시칠리 여행 후 이태리에서 절경으로 꼽히는 아말피(Amalfi)에서 1박을 하게 계획되었는데 태풍이 불어 크루즈선이 아말피를 갈 수 없다고 선장이 결정하여 아쉽게 아말피를 볼 기회가 없었다. 나도 언젠가는 아말피를 비롯해 이태리 남부 지역을 찬찬히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대연 회장님이 본 여행팀에 앞서 선발대로 희망하는 사람만 아팔피 지역을 가보자 제안하셨다. 희망자를 모은 결과 다섯 커플(김종욱, 김종창, 김종훈, 원대연, 전금홍)이 화답하여 선발대로 2019년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3박 4일간 그림 같은 이태리 남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정작 이 안을 강력히 추진했던 원회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사모님이 막판에 못 가시게 되어 원회장님은 선발대와 본진 여행을 싱글로 하시게 되어 아쉬웠다. 


나폴리 지역은 이전에 두 번 와본 적이 있었지만 아말피와 포지타노는 처음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절경을 차를 타고 즐겼고 포지타노에서 도보로 해변으로 통하는 상점가를 구경하고 맛있는 본토 음식을 해변이 코앞인 유명레스토랑에서 좋은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배를 타고 바라본 포지타노와 아말피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폼베이 지역은 여행계획이 하루 전일이 배정되어 오전에 폼베이 시가지를 보고 오후에는 폼베이시를 순식간에 망하게 한 베수비어스산을 등정하여 분화구 위까지 가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한국 투어팀은 일정상 베수비어스산을 가보지 못하는데 우리는 맵헤드(Maphead)여행사 이현동 사장님이 일정을 잘 짜주셔서 폼베이 최후의 날의 현장을 답사하고 화산폭발이 얼마나 무섭고 위력이 대단한지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폼베이 최후의 날인 지금부터 약 2,000여년 전인 AD 79년 8월 24일에 그 당시 시 전체 인구 약 20,000명의 약 10%인 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은 사전 징후를 감지하고 도피하여 생명을 구한 것으로 학자들은 판단한다. 2,000여명의 사망원인은 화산폭발로 뜨거운 용암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고 첫째는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은 경우, 둘째로 화산재가 폐에 차서 죽은 경우, 셋째는 화산가스에 질식하여 죽은 경우로 추정하고 있다. 폼베이의 면적은 66헥타르(약 20만평)와 둘레가 3200m정도 되는데 화산폭발이 3일간 계속되면서 주변도시와 함께 죽음의 재가 5~6m높이로 완전히 도시가 덮어 버렸다. 폼베이 역사는 기원전 8세기부터 도시를 건설하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몇 나라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기원전 310년에 로마가 정복하여 로마의 속국으로 수준 높은 도시가 되었다.  

폼베이는 교통의 요지여서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였고 로마 귀족들의 별장이 많았으며 로마 문명을 제대로 접목한 남부의 휴양도시로 발전하였다.


화산 폭발 후 오랫동안 화산재에 묻혀 1600여년간 묻혀 지내다가 1594년에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고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왕명을 받은 고고학자인 주세페 피오렐리에 의해서 조직적인 발굴이 되었다.


폼베이는 땅속에 묻혀서 오랫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졌다가 발굴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2,000여년의 건물, 각종 유물, 죽은 사람들의 옷과 생활도구,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프레스코 벽화 등을 통하여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의 보고로서 남아있다.


우리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시가지 인근에 있는 신비의 별장(Villa dei Misteri)는 매우 호화로운 대규모 저택이며 수많은 벽화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고대의 가장 중요한 유적 중 하나로 2,000년 전 로마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우리 일행은 짧은 일정 때문에 폼페이 시가지 중 입구에 있는 몇 가지 시설들을 간단히 돌아보는데 만족해야 했다.매표소를 지나 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를 통해 2,000년 전 도시를 들어서 바실리카(공회당)을 거쳐 폼페이 중심인 프룸을 중심으로 주변 몇 군데 시설을 견학하였다.


신비의 별장: 벽화의 일부분. 신비의 별장은 고대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