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단상
구성원 여러분
원전그룹 노희상 전무의 단상을 등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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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_대전환의 한가운데서
동반·연합·현지화로 여는 한미글로벌의 길
PM에 관한 오래된 논문 속 사진 한 장이 떠오릅니다. 수문 앞,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 규정집보다 먼저, 서로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 원형의 감각으로 지금의 시장을 봅니다. 자리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책임이 보이는 모양을 바꾸는 일. 그 한가운데 우리가 서 있습니다.
세계의 속도가 달라졌습니다.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라는 두 화살표가 같은 곳을 가리키며, 미국·유럽·아시아의 책상 위에 ‘가능성’이 다시 펼쳐지고 있습니다. 숫자를 장식처럼 늘어놓고 싶진 않지만, 국제 기구들의 최신 발표를 종합해 보면 2050년까지 새로 지어야 할 원전 설비는 대략 600~1,000 GW 규모에 이르고 있습니다. 1GW에 최소 100억불이 소요된다고 하니 시장규모를 가히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지을 수 있느냐고 묻지 않고, 얼마나 오래, 확실하게 할 수 있느냐고. 그래서 저는 시장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네 장의 풍경으로만 그려 두려 합니다.
* 대형원전 : 국가 인프라과 맞물려 움직이는 중후장대한 시장장입니다. 한 번의 품질 이탈과 설계변경이 수십 년의 신뢰를 좌우하는 시장
* SMR : 분산 수요와 표준화가 만나는 자리에서 반복 구축의 경쟁이 시작되는 시장
* 수명연장·설비개선·현대화 : 운전 중의 정교함이 성패를 가르는, 매일의 전투 같은 시장
* 후행 핵주기(폐로·처분) : 장기 인허가와 지역의 마음을 견뎌야 하는 긴 호흡의 시장
서로 다른 길처럼 보여도, 네 풍경은 한 점에서 만납니다. 증거로 말하는 능력, 곧 보이는 약속입니다. 원형의 테이블을 상상해 보십시오. 발주자 곁에 의자 하나를 더 놓는다는 말은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데이터와 같은 사실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이게 하자는 제안입니다. 안전, 규제 준수, 품질, 추적성 이 네 줄이 한 화면에서 동시에 보일 때, 목소리는 낮아지고 문장은 또렷해 집니다. 그 위에 반복되어야 할 약속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을 제때 전하는 성실함, 왜·무엇을 바꾸는지 남기는 투명성, 형상과 구성을 끝까지 되짚을 수 있게 하는 기록의 완결성. 이름이 아니라 작동하는 약속이 시장의 기억을 바꿉니다.
길의 모양도 그 기억 위에서 달라집니다. 어떤 길은 동반을, 어떤 길은 연합을, 또 어떤 길은 현지화를 요청합니다. 한미글로벌은 한전기술(KEPCO E&C), T&T와 엮어 공동의 글로벌 원전사업팀을 세상에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간판이 아니라 작동 원리입니다. 부지의 지질이 다르고, 코드와 규제가 다르고, 금융과 리스크의 배열, 지역사회의 언어가 다릅니다. 그 차이를 같은 사실로 묶어 내는 힘 - 그 힘이 우리를 어디로 얼마나 데려갈지, 시장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지식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남기려 합니다. 오늘은 시장의 요구와 방향만 놓아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는 각자의 책상 위에 남겨 둡니다.
* 시장은 우리에게 오래, 확실하게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오래 지키고, 무엇을 확실히 보여 줄 수 있을까요?
* 같은 사실을 같은 방식으로 보이게 하려면, 우리 안의 무엇을 더 단순하고 또렷하게 만들어 가야 할까요?
* 이름이 아니라 증거로 평판을 만들려면,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회사에 남아 다음 프로젝트의 첫 페이지가 되는 기록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동반·연합·현지화라는 세 갈래 중에서, 우리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원형 테이블을 먼저 펼칠까요?
*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당장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 그 한 줄은 무엇일까요?
해가 기울 무렵 불이 하나, 둘 꺼질 때, 오늘 남긴 메모를 조용히 다시 읽어 봅니다.
내일 아침, 어제와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더라도 아주 작게(거의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테이블의 모양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 작은 변화의 반복이 우리에게 길을 만들어 줍니다. 먼 어느 현장에서, 발주자와 나란히 같은 도면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를. 이 자리라면, 안전하다. 그리고 그 길의 첫 발걸음은, 우리가 스스로 묻는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내가 지킬 작은 약속은 무엇인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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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 가지 않은 길
Robert Frost (1916)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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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Robert Prost / 피천득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에서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은
발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 길을 걸음으로써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발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