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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청색시대는 언제입니까 - 김상우 전무

2024-11-18 조회수 : 902


당신의 청색시대는 언제입니까


지난 여름 휴가로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바르셀로나 한 곳에만 머물다 왔는데 과연 가우디의 도시답게 그의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여전히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독특한 모습과 스케일에 놀라고 파사드마다 새겨진 정교한 조각에도 감탄했습니다. 까사 바뜨요, 까사 밀라, 구엘 저택 등 자연에서 따온 모티브에 특유의 곡선을 살리고 인체공학적인 설계가 돋보이는 가우디의 건축물마다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그의 감성과 철학에 존경심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 뜻 밖의 감흥을 느낀 곳은 큰 기대없이 들른 피카소 박물관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피카소는 스페인 사람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가이며 현대 미술의 거장입니다. 13~14세기에 건립된 저택 다섯 채를 개조해 만든 피카소 박물관에는 그의 소년기, 청년기, 말년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을 두루 볼 수 있으며 특히 초기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느긋하게 전시실을 둘러보던 저는 어느 한 공간에서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곳은 피카소의 ‘청색시대(Blue Period)’라 불리는 시기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입니다. 거지, 광인, 알코올중독자, 장님 등 불행한 사람들을 주로 그린 그 시기의 그림들은 어둡고 스산한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전시실에는 그림들이 발산하는 슬픔과 우울의 정서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듯 했습니다. 이 시기를 말하자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때는 1901년, 가난했던 스무 살의 피카소는 카를로스라는 부잣집 아들과 둘도 없는 절친이었습니다. 둘은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고, 파리에서 카를로스는 제르멘느라는 여인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카를로스의 구애를 거절하죠. 그 해 2월 17일 몽마르트의 한 카페에서 카를로스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지만 끝내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그만 그 자리에서 권총 자살을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큰 충격에 빠지고 자책과 후회 속에서 이후 4년간 푸른색의 그림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공황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전도양양했던 젊은이가 수 년 째 방에 틀어박혀서 온통 푸르죽죽한 그림만 그려대니 미술교사였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마음에 들 리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당시 피카소의 그림들은 거의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잔소리 속에서도 피카소는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청색의 자화상’, ‘우울한 여인’, ‘인생’, ’기타 치는 눈 먼 노인’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그림들입니다. 작년은 피카소 사후 50주년이었습니다. 현재 피카소의 작품들 중 가장 값 비싸게 팔리는 그림이 어떤 것일까요? 바로 이 청색시대의 그림들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귀하게 여겨지고 인기 있는 작품들이 그가 절망의 시기에 그렸던 그림들이며 그 다음이 큐비즘과 말년의 작품 순입니다. 사람들은 청색시대의 그림에서 오히려 인간의 리얼리티를 발견하고, 슬픔과 연약함에 공감하며 그 안에 감춰진 내적인 아름다움에 위로를 받습니다.


구성원 여러분, 혹시 지금 남모르게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진 않으신가요? 때로 우울감과 절망감이 엄습해 오진 않나요? 본인만의 청색시대를 관통하고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절대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스무 살의 피카소처럼 붓질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지금이 당신의 값진 자산이 형성되는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을 빚어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1904년 피카소는 페르난도 올리비에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마침내 청색시대를 마감하고 장미빛 시대(Rose Period)로 넘어갑니다. 드디어 그의 그림에 밝은 색조와 부드러운 선, 사랑과 희망이 담긴 인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피카소는 화가로 살았던 60년 동안 회화, 크로키, 조각 등 3만점 이상의 작품을 그리고 만들었습니다. 청색시대에도 하루에 한 점 이상의 작업을 한 셈입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코로나 이후로도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고 멀리서는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본질을 마주하고, 그에 맞서 나의 일을 사랑하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청색시대가 곧 장미빛 시대로 바뀌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실의와 절망의 기록은 소중한 경험이자 작품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어려웠던 2024년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모든 시대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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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